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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터) ‘상종가’ 펭수, 그리고 씁쓸함
입력 : 2020. 01. 16(목) 18:12
“여러분들, 근데 이것도 참 어려운 거예요. 힘든데 힘내라? 이게 참 어려운 거거든요. 내가 힘든데, 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아니죠? 그쵸? 그러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사랑해라고 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사랑합니다. 펭-러뷰.”

맞다. 힘든데 힘내라고 한다고 힘이 날 리 없다. 스트레스가 극심한 사람에게 스트레스 받지 말란 말과 똑같다.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라고 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사실 한번 한귀로 들어온 말을 절대 한귀로 흘려지지 않는다. 계속 머릿속에서 맴도는데, 사람 참 힘들게 한다. 차라리 ‘사랑해’라고 말해주는 게 낫다. ‘펭수’식 언어다.

펭수는 EBS ‘자이언트 펭TV’에 나오는 펭귄이다. 나이 10살, 신장 210cm, 체중 93~103㎏, 태어난 곳은 남극이다. 캐릭터 설정이 유쾌하다. “EBS 연습생으로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는 것이 꿈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남극에서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에 착륙해서 요들송을 배우고 스위스에서부터는 헤엄쳐 인천 앞바다까지 왔다.” 펭수는 여전히 자신을 진짜 펭귄이라고 주장한다.

펭수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EBS를 넘어 다른 지상파 방송들까지 그에게 손을 내밀 지경이다. 그가 뜨면 시청률이 올라간다. 실제 지난해 말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펭수가 송가인, 봉준호 등과 함께 ‘2019 분야별 올해의 인물’에 이름을 올렸다. 펭수는 후보 각축전부터 치열했던 방송·연예 분야에서 득표율 20.9%로 1위를 차지했다. 송가인 17.6%, BTS 16.7%였다.

펭수의 인기비결은 ‘직설’이다. EBS 사장 이름도 거리낌없이 언급할 정도로 천연덕스럽다. 엉뚱한 듯 하지만 듣고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고, 어른이고 어린이고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면 되는 거예요” “사장님이 친구같아야 회사도 잘된다” “화해했어요. 그래도 보기싫은 건 똑같습니다” “왕따시키고 그러면 지구 끝까지 쫓아가서 죽탱이를 날릴거다”라는 식이다.

통쾌하다. 그러면서도 그 뒤끝에 따라오는 씁쓸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할 말 다하고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않은 세상 아닌가. 펭수의 한마디가 가져다 주는 통쾌함의 크기가 속앓이의 크기와 정비례한다고 보면 펭수의 인기가 달가울 리 없다. 그럼에도 펭수의 또다른 어록이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윤승한 논설위원 shyoon@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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